제8회 중국희곡낭독공연 <현실동화> 예술가와의 대화

2025년 9월 5일 19시 30분 공연 후

 


* 오픈채팅방에 올려주신 관객들의 감상평, 관객 질문과 번역가 연출가의 답변을 정리했습니다. 

공연은 끝났지만 공연의 여운을 함께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관객 감상펑

 

* 너무 독특한 소재와 연결이 기억에 남네요. 꽃, 금붕어, 토마토가 연결되는 연출력이 돋보였습니다. 이야기 하고싶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대변해주는 대사들이 인상 깊었습니다

 

* 1막 2막 3막 전부 어떤 자아분열의 모습으로 마지막을 맞는 것이 신선하게 느꼈습니다. 강렬한 공연이라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것 같아요. 잘 봤습니다. 2막에서 배우분들의 목소리가 점점 고양되게 흘러가면서 어떠한 파멸을 맞이하는 것. 같은 그 부분이 계속 귓가에 맴돌아요.

 

* 중국공연과 비교하면서 봤는데 또 다른 매력이 있네요. 중국 공연 당시의 연출님도 무대가 너무 이쁘다고 제3장의 연출도 너무 잘 어울린다고 하네요! 공연 잘 봤습니다!

 

* 소리만으로도 무대 전체에 글자와 글자, 문장들과 문장들이 떠다니고 이리저리 부딪히는 환상과 마주하는 경험을 전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3막의 여러 실험은 보는 내내 우리 연극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언어적인 연극의 압권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미 전달에서 많은 부분이 전달과 동시에 해체하고 있는 듯했고, 음성언어와 문자언어를 동시에 체험하면서 그 간격이 벌어지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배우분들이 대사의 발음을 우리의 평상시 발음과 다르게 내뱉으면서 느끼게 되는 낯섦의 효과, 거기에 대화 역시 여러 명이 중복해 뱉음으로 인해 대화라는 것 자체를 낯설게 하는 효과, 무엇보다 배우들의 의자를 모두 다른 방향을 향하게 하면서 서로를 바라보지도 않고 관객을 향하지도 않는 배치가 역시 소통과 대화의 불가능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석했습니다. 어쩌면 노부부의 대화 내용도 (부조리극의 그것처럼) 연극 내적인 내용에 기여한다기보다 현대사회의 소통 어려움과 분열적인 모습을 보여준다고 생각했습니다.

2막에서 무대 뒤편을 유영하는 금붕어의 이미지는 그 어떤 (낭독극이 아닌) 입체적인 연극의 무대 장치보다 더 황홀한 시각적 자극을 주었고요. 오래 기억에 남을 작품이네요. 꼭~ 무대화되길 소망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김우석 번역가 답변

 

* 낭독공연에 올릴 세 작품은 그해그해 우리 협회 이사로 계시는 평론가+연출가+제작자+중국연극전공자로 이루어진 이사회에서 결정합니다. 그동안은 그해 그해 발굴되는 수작들 중에서 고르는 중입니다. 어떤 주제나 방향성을 갖는 방법에 대해선 항상 건의도 있고 논의도 해보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아직까지 시도하진 못하고 있습니다. 그대신 지난 몇년 간은 최신작을 바로바로 번역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갓 나온 따끈따끈한 작품을 거의 실시간으로 여기에서 낭독공연을 올릴 수 있었던 점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 양야오쉐는 젊은 작가로 소설과 희곡 등 창작활동도 열심히 하지만 학자이고 교육자이기도 합니다. 이 한 작품만으로 이 작가의 매력을 말하기는 조금 이르고 더 지켜보고 싶습니다. 다만 이번에 이 작품을 고른 것은 국적을 지우면 우리 이야기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만큼 우리 상황과 많이 비슷한 생각과 이야기가 들어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중국 작가들과 마주보면서 "다름"을 말하지 않고 "같음"을 말할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하는 꽃과 말하는 금붕어가 너무 귀여웠고, 열차에서 부친과 모친의 티키타카가 사랑스러웠습니다.

참고로 양샤오쉐가 이 작품에 이어 집필한 작품이 얼마 전 북경에서 올랐고, 그 작품 역시 저희에게 보내주었습니다. 역시 수작이었습니다만, 역사물이어서 소개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좀더 필요합니다.

 

* 작품을 받아서 번역하는 과정에서 종종 작가로부터 중국에서 한 공연의 영상을 받아보기도 하는데요, 저의 경우는 저만 보고 연출님들께는 전달하지 않는 편입니다. 연출님들도 굳이 원하지 앟고요. 공연을 준비하는 중에는 당연히 그래야 할 것 같고, 공연이 끝난 뒤에도 영상 보자는 분은 없었습니다. 각각 자기의 예술세계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두 가지 놓고 감상해보면 이것 또한 나름 꿀잼입니다. 이제 중국 무비자 여행 가능하니 정보와 시간이 허락하면 연극 보러 다녀오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 원작에서는 세번째 에피소드가 당연히 부친과 모친의 대사가 구별됩니다. 최근 오른 공연에서는 세 번째 파트의 부친과 모친을 맡은 배우의 성별을 바꿔서 공연했습니다. 남자배우가 엄마를 맡고 여자배우가 아빠를 맡았습니다. 재밌었습니다.

 





<심지후 연출가 답변>

 

Q 먹는다는 행위가 이 희곡에서 중요하게 느껴졌는데, 공연에서 어떤 의미로 이 동사가 작용했는지 궁금합니다!

맞습니다. 1장에서는 여자가 꽃의 이파리를 뜯어서 먹는다, 즉 꽃이 하는 말을=대본을 뜯어먹는다. 2장은 '남자'로 대표되는 이데올로기, 즉 물신성에 입맛을 다시고 그것에 동화/ 전염된다. 3장은 마비성 독이 든 초록 토마토를 먹고 이미 취한 상태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거라고 연습 중 얘기나누었습니다. 열려있습니다.

 

Q 처음 희곡을 읽고 어떤 인상을 받았는지 궁금합니다.

1,2,3장 모두 30대 여성의 독백처럼 들렸습니다. 외로워하는 것 같았고, 뭐 때문에 이 사람이 이렇게 외롭나를 샅샅이 뒤져봤던 거 같습니다. 마크 피셔의 <자본주의 리얼리즘>을 참고했어요. 어제 미처 말씀 못 드렸는데 네 배우 모두 여성 배우로 섭외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Q 공연 재밌게 봤습니다. 극에서 배우분들 사이에서의 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배우분들끼리 합을 맞추기 위해 특히 애쓰셨던 부분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아마 3장을 말씀하시는 거겠지요. 즉흥을 살리기 위해 연습을 많이 안 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애쓴 지점일까요? 덧붙이면 내적 충동에만 집중할 구간 약속을 정했고, 그 외 구간에서는 즉흥(목소리 뷰포인트)이 뻗어나갈 수 있는 갈래를 열어두는 연습을 했습니다. 아 제일 중요한 거, 얘기를 진짜 오래 나눴습니다.

 

Q 번역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번역만이 아니라 윤색도 진행된 작업인가요?

네. 어미나 주어 서술어 목적어의 순서를 바꾸는 정도의 윤색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읽기 좋은 글과 듣기 좋은 말은 달라서 말맛을 살리는 쪽으로 윤색했습니다. 번역가 선생님들께서 자유도를 열어놔주셔서 가능했던 덕입니다.

 

Q 마지막 이야기에서 소품을 사용하지 않았는데 무대 위에 펼쳐진 이유가 있을까요?

3장은 동화의 세계가 종료되고 현실로 넘어온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우스 커튼도 완전히 걷히고 동화소품들이 배우로부터 분리되어 떨어져있습니다.

 

Q 낭독공연은 그 자체로 공연으로의 독자성도 있지만 새 작품을 소개한다는 의미도 있는데, 연출가의 욕심이 과도해서 작품 자체를 이해하는 원래 목적에는 좀 불충분해서 아쉽습니다.

아, 이렇게 보실 수도 있겠습니다. 이것은 토론이 좀 필요한데, 작품을 이해한다는 것에 대하여, 전달한다는 것에 대하여 제가 생각하는 바를 먼저 말씀드려요.

작가님께서 직접 읽으시는 것이 아닌 이상, 배우의 몸을 통과하는 한 낭독 역시 어쩔 수 없이 오독이 발생합니다. 아무리 연기 혹은 연출을 '뺀다'한들 타인을 통과한 말이므로 원텍스트 그대로를 담고 있을 순 없습니다. "사람을 거친다"는 것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연극은 타인을 반드시 거쳐야 비로소 구현되는 예술장르입니다. 이 희곡을 무대에 올리고, 관객을 만나게 하겠다고 결정한 이상 희곡을 최대한 충실히 읽고, 배려하여 해석하고, 연출의 삶의 전제와 세계관을 거쳐 해석해내서 구현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배우들과 최대한 이야기하여 배우들의 세계관을 거쳐 발현되게 하는 것, 그게 이 희곡을 연극의 형식으로 전달하는 최선의 방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덧붙여 이 방향이 작품을 작품으로서 존중하는 방식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Q 세 번째는 혹시 원 대본 자체도 벽면에 비춰진 것처럼 작성되어 있나요? 텍스트가 빽빽이 무대 후면 벽에 투사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대본은 대본 형식대로 쓰여있어요. 텍스트를 빽빽히 벽에 비춘 이유는 3장에서 인물(역할)이 사라져있는 상태라고 해석하였고 글, 말, 배우만 남기기 위해서였습니다. 말은 배우가 하고 무대에 배우신체가 있고 글은 벽에 '글'처럼 투사했습니다.

 

Q 첫 번째 장에서 풍선을 날리는데에 의미가 따로 있을까요?

아 1장에서 사운드가 계속 들리는데요, 추락하는 사운드들입니다. 화분이 떨어지거나, 돌이 떨어지거나, 볼펜이 굴러가거나, 노트북이 떨어지는. 중력의 법칙(마땅히 그래야 함)에 지배받았던 여자의 삶을 표현한 것이었구요, 거기에서 벗어나고 싶어한 여자의 욕구를 대비시켜 풍선으로 표현했습니다. 중력에 반하여 상승하는 이미지를요. 사실은 이 풍선이 여자의 죽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Q 희곡에서 먹히는 생물들이었던 꽃과 금붕어는 말을 했는데, 초록토마토도 말을 할 수 있었을까요? 꽃은 먹힌 후 죽었는지도 궁금합니다.

꽃은 안 죽었습니다. 이파리가 뜯겨서 놀라고 아프긴 했습니다. 초록토마토는 말을 했을라나요?! 글쎄요. 재미있는 상상을 하게됩니다. 중얼거렸지 않을까나.

 

Q 중국희곡 원작을 접했을 때 한국문화와 다른 느낌은 없었나요?

처음 읽었을 땐 30대 여성의 목소리가 가장 크게 들렸서 크게 다르다는 느낌은 없었어요. 다만 김이삭 번역가님께서 말씀해주신 중국의 상황을 밑바탕에 두고 보면 더 구체적인 상황이 그려질 수 있을 것 같아서 아쉬웠습니다. 예를 들어 지역을 이동할 때 꼭 결혼을 하거나 일자리가 있어야 한다는 게 한국과 차이가 있고, 이런 걸 각주로 달 수가 없어서 좀 아쉽긴 했습니다!

 

Q 1,2막 너무 재밌었는데 3막은 좀 어려웠어요. 왜 스타일을 달리 하셨나요?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이 모두 외로워요. 왜 외롭지? 고민했었구요. 외롭게하는 건 사실 이들이 살고 있는 현실 때문이다, 상품 생산 사회에서 모두가 대상화되고 대상화하고. 물신화되고. 견디다 자살하고 팔리고 잡아먹고 죽고 죽이고. 1,2장이 현상(견디다 자살하고 팔리고 잡아먹고 죽고 죽이고)을 동화의 형태로 보여준다면 이 현실을 표현하는 건 3장인 것 같았어요. 멈추지 못하고 굴러가는 자본주의 사회를 기차의 은유로 삼았어요. 이 현실에서 무대 위 발화자는 누구냐? 기차에 타고 있는 깨어있는 사람이다. 해서 이런 형식이 나왔습니다.

 

Q 중국공연을 참고한 부분이 있을까요?

앗 없습니다! 영상은 받아서 봤는데 아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꽃기린과 협죽도의 연애장면도 있었습니다. 기회가 닿으면 연출님과 인사하구 싶습니다.

 

Q 3막의 낭독은 의미 전달을 의도적으로 해체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소외효과일 수도 있고, 기표 기의가 해체되는 황병기 선생의 <미궁>에서 홍신자 씨의 낭독이나 6,70년대 전위, 언어극이 연상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연극에선 매우 신선한 느낌이 들었는데, 연출님이나 극단이 이런 쪽을 추구하시는요?

아, 막 추구하지는 않지만! 피하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저희 사운드디자이너 임서진 감독님께서는 영국의 전자음악뮤지션 더 케어테이커의 음악이 떠올랐다고 하시더라구요.

 

Q 양샤오쉐 작가만의 매력 포인트가 있다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말이 간결하고 리듬이 빠르고 사건이 꼬여있다? 아름다운 글 같습니다.

 

Q 1막 끝나고 나왔던 노래 제목 다시 한번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Now n New - 하나 되어입니다! IMF시기에 나왔던 노래입니다. 이 노래를 썼던 이유에 대해 어제 말씀을 좀 덜 드려서 덧붙이자면, 경제불황, 공황으로 개인들이 무수히 목숨을 잃었고

그때의 죽음들과 현재 젊은 여성들의 우울과 자살이 겹쳐 보입니다. 나의 부족함 때문이 아니라 시스템의 부족함 때문에 사람이 죽어요. '희망이 있어' '하나되어 이겨내' '나의 부족함을 다시 생각해' 같은 가사로 아이러니를 드러내고 싶었어요. (원래 풀 노래 전체를 쓰고싶었어요..!)

 

Q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은?

3장에서 반짝이는 말들이 참 좋습니다. 저희 배우님들 진짜 짱입니다.